실향민 — 정동진 바다 앞에서 떠올린 고향의 그리움

실향민, 사진 앞에서 떠올린 이름
정동진 앞바다에서 두 사람이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.
한 사람은 팔짱을 낀 채 서 있었다. 어머니는 바위에 앉아 손으로 얼굴 한쪽을 받치고 있었다.
그 뒤로 파도가 밀려왔다가 물러났다. 두 사람은 말이 없었지만, 같은 바다를 보며 서로의 곁을 지켜주는 듯했다.
나는 어머니가 실향민인지 알지 못한다. 어디에서 태어났는지, 이 바닷가에 어떤 사연으로 왔는지 묻지 않았다.
어쩌면 함께 온 사람과 잠깐 쉬고 있었을 것이다. 바다를 바라보는 일이 그날의 여행에서 가장 편안한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.
그런데 사진을 들여다볼 때마다 나는 고향을 생각하게 된다. 갈 수 없는 곳을 오래 품은 사람의 모습이 어머니의 뒷모습에 겹쳐 보인다.
이것은 어머니가 들려준 이야기가 아니다. 사진 앞에 선 내가 떠올린 이야기다.
그 고향을 나는 북한 어딘가로 상상했다. 바다 너머에 실제로 보이는 마을이 있어서가 아니다.
눈앞에 길게 펼쳐진 수평선 때문이었다. 가까이 기억하면서도 끝내 닿을 수 없는 곳처럼 느껴졌다.
고향은 몸에 남는다
고향은 지도 위의 이름보다 먼저 몸에 남는 것인지도 모른다. 아침마다 열던 문, 맨발로 밟던 마당, 밥을 먹으라 부르던 목소리.
떠날 때는 다시 만날 줄 알았던 사람들. 시간이 흐르면 집은 없어지고 길도 달라질 테지만, 기억 속에서는 누군가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다.
그래서 고향을 잃는다는 것은 장소 하나를 잃는 일로 끝나지 않는다. 그곳에 두고 온 자신의 한때를 다시 찾아갈 수 없게 되는 일이다.
지금의 나를 알아보는 사람은 많아도, 어린 날의 나를 불러줄 사람은 점점 줄어든다.
사진 속 어머니는 작다. 넓은 하늘과 바다가 화면 대부분을 차지한다. 그런데 내 시선은 자꾸 그 작은 뒷모습으로 돌아온다.
어머니가 무엇을 보고 있었는지보다, 그 마음 안에 무엇이 남아 있었을지가 궁금해진다.
묻지 못한 이야기
카메라는 그 답을 담지 못했다. 옷의 주름과 손의 위치, 바다를 향한 자세만 남겼다. 그리움이라는 이름은 내가 나중에 붙인 것이다.
이 사진의 제목을 ‘실향민’이라 정하면서도 그 점을 잊지 않으려 한다. 제목이 한 사람의 삶을 대신 설명할 수는 없다.
다만 이 장면을 통해,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는 고향을 품은 사람들을 생각해보고 싶었다.
정동진의 파도는 계속 밀려왔다.
어머니는 그 앞에 앉아 있었다.
나는 셔터를 눌렀고, 묻지 못한 이야기는 사진 속에 남았다.
촬영 장소: 정동진 앞바다. ‘실향민’은 사진가의 해석을 담은 제목입니다. 사진 속 인물이 실제 실향민인지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.
촬영지 안내: 한국관광공사의 정동진해변 소개